나는 합리적인 사람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사람' 이었다 - feat. 비이성의 법칙 : <인간 본성의 법칙> by 로버트그린

naver 2025년 12월 18일

나는 내가 꽤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다.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고, 설명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 그런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던 거였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성보다 비이성이 먼저 작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컨트롤 센터인 뇌의 구조를 보면 그럴만 하구나 하고 바로 알 수 있는데,

가장 아래에, 어떤 것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파충류의 뇌'가 있고,

그 위에 변연계, 그리고 맨 위에 신피질이 위치하는 구조다.

'파충류의 뇌'는 원초적 생존 시스템으로, 살아남기 위해 순간적으로 '반응'한다.

절대로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 그냥 바로 한다.

'변연계'는 감정, 동기, 행동, 장기 기억 형성과 연결된다.

사실보다는 '느낌'이 중요하고 논리보다 우선한다.

'신피질'은 전전두엽으로 불리며, 생각과 조절을 담당한다.

바로 반응하지 않고, 충동을 조절하고, 감정을 다루고, 계획과 판단을 하도록 돕는다.

어쩔 수 없으니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뇌가 그런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 기본적으로 합리적이기가 쉽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자는 거다.

합리적인 사람인 줄 착각하고 살아왔는데, 합리화하고 살아온 거다.

내가 비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 것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끼워 맞추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그래서 비이성적인 것은 결함이 아니라, 구조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비이성적인 존재라는 것.

감정이 먼저 움직이고,

논리는 그 뒤를 따라가며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낸다고.

나는 그 문장을 읽고 잠깐 멈췄다.

맞았다.

나는 이성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이성으로 포장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마치 두 번째 자아가 바로 옆에 서 있는 것과 같다.

하나는 분별 있고 이성적인 자아,

다른 하나는 꼴통 짓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그렇지만 가끔은 너무나 재미난 자아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 재미난 일을

몹시도 저지르고 싶어 하는 자신을 깨닫는다.

이유는 모른다.

마치 내가 내 뜻을 거스르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온 힘을 다해 저항하는데도 자꾸만 저지르고 싶어진다.

도스토예프스키, <미성년> 중에서

. . .

감정이 먼저다

논리는 나중이다

나는 어떤 일을 보고, 어떤 말을 듣고, 어떤 상황에 놓이면 먼저 '반응'한다.

표정이 먼저 굳고, 목이 먼저 뜨거워진다.

그 다음에야 생각이 온다.

“내가 화난 건 정당해.”

“내가 불편한 건 저 사람이 잘못해서 그래.”

“내 판단이 맞는 이유는 이렇고 저렇고…”

이게 바로 내가 자주 하는 일이다.

결정은 이미 해놓고, 이유를 나중에 찾는 것.

그리고 그 이유는 대체로 굉장히 논리적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내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걸 눈치채기 어렵기 때문이다.

. . .

비이성은 멍청함이 아니다

대부분은 ‘자기보호’다

나는 누군가처럼 크게 소리치며 감정적으로 굴지 않는다. 가 아니라,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비이성은 그렇게 드러나지 않는다. 비이성은 더 조용하게 온다.

- 인정받고 싶은 마음

-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

- 틀렸다고 말하기 싫은 마음

- 내가 한 노력이 헛되게 느껴지는 공포

결국 비이성은 내 안의 불안이, 내 안의 자존심이 살아남기 위해 만드는 방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사실이 아니라 감정을 지키기 위해 논리를 사용한다.

. . .

내가 제일 취약한 순간은 ‘확신’이 드는 순간이다

확신이 들면 마음이 편해지고,

불안이 사라지고, 세상이 단순해진다.

그리고 그때, 나는 위험해진다.

“이건 분명해.”

“내가 맞아.”

“저 사람은 틀렸어.”

확신은 때때로 진실이 아니라 내 마음을 안정시키는 약 같다.

그래서 나는 요즘 확신이 들면 한 번 더 멈춘다.

그 확신이 펙트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감정인지.

. . .

감정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대신, 이름을 붙인다

예전의 나는 감정을 부정하려 했다.

“난 괜찮아.”

“난 냉정해.”

“난 이성적이야.”

그럴수록 감정은 더 깊이 숨어서 내 결정의 운전대를 잡았다.

그래서 나는 방식을 바꿨다.

감정을 밀어내지 않고, 그냥… 인정한다.

“아, 나 지금 조급하구나.”

“아, 나 지금 억울하구나.”

“아, 나 지금 인정받고 싶구나.”

이 한 문장이 내가 나를 속이는 속도를 늦춰준다.

감정은 승객으로 태워도 된다.

하지만 운전대는 내가 잡아야 한다.

. . .

비이성을 없앨 수는 없다

대신, 그 영향을 줄일 수는 있다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오늘도, 내일도.

다만 예전과 달라질 거라 믿는 건,

내가 이렇다는 걸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리리라는 것.

내가 누군가를 단정하려 할 때,

내가 내 선택을 정당화하려 할 때,

내가 “분명해”라는 말을 쉽게 꺼낼 때.

일단 멈추고 조용히 물어볼 거다.

“지금 내가 진짜 두려워하는 건 뭐지?”

그 질문은 나를 조금 더 사람답게 만들 거라 믿는다.

. . .

나는 완벽히 합리적인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이기도 하고.

대신 내 감정이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게 하려고 한다.

오늘도 나는 흔들리겠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솔직해져야지.

합리화로 스스로 더 멍청해지진 않을거다.

반응하지 말고 일단 멈추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생각하고나서 말하고 행동하자.

너무 어려운 건가?^^;

+언제나 지금,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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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s://m.blog.naver.com/soundlife/22411015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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